초급반/Baza kurso

 Login  Join

:: 자멘호프 전기-10
LEE Jungkee  (Homepage) 2011-02-08 12:54:49, Hit : 1,372, Rec. : 132

불로뉴 대회이후 자멘호프는 인류인주의 활동과 함께 언어 개선에 전념하였다. ‘기본 (Fundamento de Esperanto)’ 서문에서 그는 불로뉴대회에서의 언어 개선 문제에 대해 자세히 말할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그는 불로뉴에서의 불화를 피하기 위해 그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 언어 문제에 대한 질문들의 답변을 앞으로 있을 대회중의 한곳으로 미루고, 그는 그 질문들을 쟈발과 편지로 다루었다. 1905년 9월 24일 자멘호프는 쟈발에게 광범위한 내용을 담은 편지로 자신의 언어 개선 생각을 제시했다.  
그는 에스페란토가 완벽하지 않치만, 완벽하지않은 부분은 많치 않으며, 수정 가능할뿐만 아니라, 수정되어야 한다고 고백했다.
왜냐하면 "에스페란토는 100~150개의 단어와 문법 형태를 갖고있는데, 그것이 실제로 잘못되었다고 한다면. 그것의 수정은 단지 몇시간의 배워야만할 일꺼리를 모든 에스페란티스토들에게 평생 단 한번 주게 되겠지만, 에스페란토 언어를 위해서는 엄청난 큰 얻음이 될수 있기 때문입니다." 20)
자멘호프는 바꾸어야만하는 불편한 요소들을 목록화하였고, 신조어의 도입으로 변화를 가져올수있음을 강조했다.- 옛 것을 바꾸지않으면서 새로운 단어와 문법 형태를 옛 것들과 나란히 유지할수도 있다고 보았다.

자멘호프는 자신의 안을 정리하여 1906년 1월 18일 쟈발에게 보냈다. 쟈발로서는 당황스럽게도 자멘호프가 알파벹의 수정을 제안하지 않았던 것이다. 자멘호프의 생각은 모든 인쇄소와 전신국에서 에스페란토 글자체를 갖게 될것이고, 그 동안에 사람들이 윗부호를 붙여야하는 글자 뒤에 독일사람들이 '모음 위에 찍힌 두점' 대신에 'e'를 사용하듯이  'h'을 붙여 사용토록 권했다.
구체적인 수정은 많치 않았다. - 4개의 문법적 요소의 수정과 몇 십개의 새로운 단어들 그리고 너무 길거나 오해를 낳을수 있는 단어  대신에 접두사를 사용하는 방법.
쟈발은 전신에서 일상의 문자로서 '윗부호'있는 글자를 대체하는 안에 대해 언어 위원회에 보고서를 썼다. 그는 프랑스 학교에 에스페란토를 도입하는 법률을 제안한 국회의원 Lucien Cornet 를 설득했다. 12명의 국회의원들이 서명한 그 법률안은 1906년 4월 3일 국회에 제출되었으나 통과되지 못했다.
쟈발은 국회의원과 프랑스의 공립교육 관련 최고 위원회와 상의한 뒤, 에스페란토의 윗부호 문제와 원칙없는 상관사 단어들 문제때문에 에스페란토를 수용할수 없다는 만남의 결과를 자멘호프에게 편지로 보냈다. 자멘호프는 만약 쟈발이 프랑스 정부로부터 에스페란토 도입을 보장하기만 한다면 ‘쟈발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에스페란토의 모든 부분을 수정 할수 있는 전권과 자신의 공개적인 서명’ 을 쟈발에게 줄것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물론 쟈발은 그것을 보증 할수가 없었다.

8월 27일부터 9월 5일까지 제네바에서 열린 제 2차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는 거의 별 문제없이 지나갔다. 언어 수정에 대한 문제도 전체회의에서 다루어지지 않았으며, 쟈발의 보고서도 자멘호프의 인류인주의안과 마찬가지로 다루어 지지 않았다.
제네바에서 쟈발은 수정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검토토록 자멘호프를 설득하면서 ‘쟈발이 수정하고자하는 의견들을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처럼, 미래 세대들도’ 에스페란토 학습을 쉽게 하게 하기 위하여 자멘호프로 하여금 필요한 부분의 수정을 부탁하면서 25만 프랑크의 지원을 그에게 약속했다. 그 돈은 '벨기에 종' (Belga Sonorilo)의 창립자인 벨기에 무관 Charels Lemaire 와 왕립 벨기에 에스페란티스토 연맹회장이 참여하여 조성했다.

1906년 10월 17일부터 23일까지 파리에서는 자멘호프, Lemaire, 쟈발 그리고 두명의 비교언어학자 Miguel de Torro와 Andre Blondel이 참석한 가운데 비밀회의가 열렸다. 모두들 다양한 수준의 수정을 원했으나, 그들은 수정의 방법에 대해 합의하는데 실패했다. 왜냐하면, 자멘호프는 다른 사람과 달리 에스페란토를 쉽게 바꿀수 있는 도구가 아니라 살아있는 언어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자멘호프는 지원을 약속한 돈의 5% 이자만 가지고도 자신의 안과의사 직업을 그만두고 걱정없이 살수 있었지만, 그는 그 돈을 거절했다.
그러나 자멘호프는 쟈발과 Lemaire 가 개인적으로 쓸수 있는 편법의 대용 철자를 사용하는데 동의하고, 만약 쟈발이 그러한 시도를 공개할지라도 항의하지 않을것임을 약속했다. 그 안에는 Michaux, Emile Gasse, 그리고 Gaston Moch가 동참했다. Lemaire는 수정 제안들을 잡지 ‘Belga Sonorilo’ 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한편 자멘호프와 수정성향의 에스페란티스토들은  '국제 보조어의 채택을 위한 대표단'의 주창자인 Louis Couturat 교수와 서신을 교환하였다. 그 대표단은 1900년 파리 박람회때 제안된 것으로 국제어 문제를 연구와 가장 적합한 국제어를 선정하기 위하여 1901년 1월 17일 설립되었다. 그 선정은 국제 학술 협회(Internacia Asocio de Akademioj)가 하게 되고, 만약 그 기관이 거부하면, 대표단 이사회(Komitato de la Delegacio)가 하게 되어 있었다.

1906년 11월 1일, Couturat는 자신의 제안인 '윗 부호없는 에스페란토' 를 자멘호프와 몇몇 수정주의 에스페란티스토들에게 보냈다.
자멘호프는 언어 위원회에 발송될 '신조어에 대하여' 라는 회람 속에 그 문제를 다루려고 하던 중에 Couturat 의 안이 와주어서 그에게 감사했다.

Michaux는 Couturat의 안에 동의했지만 자멘호프의 동의없이는 그것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쟈발과 Lemaire는 그 안에 동의했다. '윗 부호없는 에스페란토' 는 Louis de Beaufront 도 관심을 갖었다.- 그때까지 모든 영향력있는 에스페란티스토 가운데 그가 가장 반 수정주의 입장이었다.

11월 22일, 자멘호프는 Boirac에게 '신조어에 대하여' 라는 회람을 언어 위원들에게 발송토록 그에게 원고를 보냈다. 많은 최근의 제안들과 실험의 영향으로 그는 윗부호를 없애고 그것을 사용할 것임을 약속했다. 그러나 Boirac은 그 회람을 언어 위원들에게 (자멘호프에 의해 천거된) 보내는것을 거절했다. Bourlet은 La Revuo 지에 자멘호프 수정안을 싣는것을 거부했다. 자멘호프는 더이상 자신의 수정안을 고집하지 않는것이 수정주의자와 현상 유지주의자간의 분파를 피할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수정 열병은 에스페란티스토들를 감염시켰고, 으뜸 수정주의자 쟈발의 죽음(1907년 1월 20일) 조차도 그 수정 열풍을 잠재울수 없었다.

Couturat의 의견을 Michaux, Beaufront, Moch 그리고 Lemairer가 검토하였다. 자멘호프로서는, Couturat 자신이 제안한 안의 편집을  Beaufront에게 맡기는것은 주저스러웠다. 1907년 5월 Beaufront은 Couturat의 안을 편집하여 그 언어를 'Ido' 라는 이름으로 서명했다.
수정주의자들은 '이도'의 정체를, 즉, 공식적으로는 Beaufront이었으나, 실제로는 Couturat 이었는데, 이를 밝히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1251명의 교수와 학술원 회원, 307개 협회가 참여한 가운데. 대표단은 국제 학술협회에 의견을 물었다.
1907년 5월 29일 학술 협회는 비엔나에서 열린 총회에서 그 안건을 다루지 않기로 결정했다.

1907년 6월 25일, 대표단은 자체 위원회를 구성했다. 그 위원회는 훗날 노벨 화학상(1909)을 수상한 Wilhelm Ostwald가 사회를 보았다. 부위원장은 저명한 언어학자 Jan Niecislaw Baudouin de Courtenay과 Otto Jespersen 이었다. 그 위원회는 몇몇 언어학자(Hugo Schchardt), 정치가, 인공어 발표자등 모두 14명이었다. Couturat와 Leopold Leau는 사무국원으로 참여했다.
1907년 10월 15일부터 24일까지 대표단 위원회는 파리에서 회의를 갖었다.  위원회는 국제어의 기본적인 원칙을 검토하였다: 국제성 (Jespersen), 동의어(Ostwald), 어순변경 (Couturat) 그리고 그 요소들로 언어를 실험해 보았다. 그 위원회에 중요하게 다루어질 언어의 창안자들이 자문 자격으로 초대되었다.  자멘호프는 '에스페란토의 두번째 아버지' Louis de Beaufront 을 보냈다.

1907년 10월 24일 위원회는 마지막 회의에서 검토된 언어중 수정없이는 그 어떤 언어도 채택할수 없다고 발표했다. 그렇치만, 위원회는 비교적 완벽하고 광범위한 적응성을 고려하여 에스페란토를 받아들이기로 조건부로 결정했다.
에스페란토 언어 위원회와 합의를 위해 노력하면서, 사무국 보고서의 결론과 Ido안을 가지고 한정된 범위에서, 상임위원회의 실천가능한 수정이 조건이었다.
상임위원회는 '특별한 경쟁적 사안 때문에' 새 위원으로 Ostwald(위원장), Baudouin de Courtenay, Jespersen, Couturat, Leau, 그리고 Beaufront 를 선출하였다.
그 위원회와 자멘호프 그리고 언어 위원회간의 협의가 쉽지않았다. 자멘호프는 여러차례 수정을 제의했으나, 그것은 단지 에스페란토의 창안자의 자격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제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1907년 10월 30일 바르샤바로 그를 방문한 Baudouin de Courtenay 조차도 그를 설득시키지 못했다.
Boirac은 현실적인 힘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사회를 본 100명의 언어 위원회를 이끌 실무 능력이 없었다.
Ostwald, Couturat 그리고 Beaufront은 자신들이 제안한 안의 완벽성을 승인 받은 후에서야 에스페란토의 수정에 자신들의 힘을 겨우 보태려했다.
더우기, 에스페란토의 언어 당국의 불명확성이 상임위원회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관련 업무를 자멘호프와 상의해야 하는지 아니면 언어 위원회와 해야하는지가 문제였다.
자멘호프는 균형감각을 상실했다. 가장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기 위하여 회의를 제의했다가, 그 다음날 그 회의가 불필요하다고 발표했다. 한때는 Boirac이 언어 위원회를 활성화 하도록 요청했다가, 한때는 Boirac이 외부 기관과의 협의 자격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Boirac은 언어 위원장직을 사임하려했으나 자멘호프의 고집때문에 그 자리를 지켜야만 했다.
마침내 1908년 1월 18일 자멘호프와 Boirac은 각각의 편지를 통하여 Ostwald에게 대표단과의 협의를 중단하겠다고 통보했다.
그 어떠한 합의에도 이르지 못하고, 에스페란토의 개선 대신에 세계는 그 뒤에 나온 계획어 Ido를 받아들이게 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대표단 위원회의 결정은 에스페란티스토 집단을 분열하게 만들었다. 단지 5%의 에스페란티스토들만이 idisto가 되었으며, 그 당시 지도자중 20%까지 Ido로 넘어갔다. 몇몇 잡지와 Nurenberga Klubo를 포함한 협회들이 Idiom-Neutral을 떠나 Ido에 가입했다.
L' Esperantiste (1908) 5월호에 Beaufront은 자신이 Ido 임을 밝혔으며, 11월에 SFPE 회장직을 물러났다. 그러나 그 어느 나라에서도 idisto의 수가 에스페란티스토의 수를 넘어서지 못했으며, 전세계 idisto 협회의 화원수는 600명을 넘어서지 못했다.



  : Rec.   : List

  자멘호프 전기-10    LEE Jungkee 2011/02/08 132 1372
930   자멘호프 전기-9    LEE Jungkee 2011/02/07 139 1382
929   자멘호프 전기-8    LEE Jungkee 2011/02/06 146 1344
928   자멘호프 전기-7    LEE Jungkee 2011/02/05 187 1384
927   자멘호프 전기-6    LEE Jungkee 2011/02/03 136 1330
926   자멘호프 전기-5    LEE Jungkee 2011/02/03 153 1292
925   자멘호프 전기-4    LEE Jungkee 2011/02/02 140 1307
924   자멘호프 전기-3    LEE Jungkee 2011/02/01 138 1339
923   자멘호프 전기-2    LEE Jungkee 2011/01/31 140 1342
922   자멘호프 전기-1    LEE Jungkee 2011/01/30 140 1527
921     이 책에 대하여    LEE Jungkee 2012/10/25 84 552
920   '좋은 생각' 을 읽다가,    LEE Jung-kee 2011/01/29 136 1137
919    Esperanto kaj mi (에스페란토와 나)    LEE Jung-kee 2011/01/23 150 1465
918   Esperanto, kiu estis cxio por mi en mia vivo    LEE Jung-kee 2011/01/23 195 1292
917   Robert Frost 의 시 감상    LEE Jung-kee 2010/12/25 137 1324
916    Eĉ birdoj pepis esperante en la Zamenhofa ta...    LEE Jung-kee 2010/12/17 146 1417
915   Du leteroj de L. L. Zamenhof    LEE Jung-kee 2010/12/11 144 1237
914   [시 감상]Se mi estus rozo / 내가 만약 장미라면    LEE Jung-kee 2010/12/10 152 1293
913   Mazara del Vallo volas iĝi ĉefurbo de Es...    LEE Jung-kee 2010/12/09 144 1279
912   자멘호프박사 사진들    LEE Jung-kee 2010/12/07 136 1216
911   Letero al Kofman    LEE Jung-kee 2010/12/05 154 1197
910   Nova malnova letero de Ludoviko Zamenhof    LEE Jung-kee 2010/12/05 144 1224
909   Unu letero de Zamenhof    LEE Jung-kee 2010/12/05 166 1216
908   Al Sro de Beaufront    LEE Jung-kee 2010/12/05 149 1193
907   Enigmoj de Ludoviko Zamenhof    LEE Jung-kee 2010/12/05 152 1263
906   Du leteroj de L. L. Zamenhof    LEE Jung-kee 2010/12/05 155 1183
905   [단국대학교(죽전) 목3.4 도예과 32100391 조희선] Mi volas....    조희선 2010/11/27 142 1689
904   [원광대학교 수7,8] 한의예과 20092690 노지현    노지현 2010/11/26 180 1467
903   [단국대학교 천안 화 3,4] 법학과 52090490 윤보라    윤보라 2010/11/26 148 1430
902     [re] [단국대학교 천안 화 3,4] 법학과 52090490 윤보라    CHO Myoung-ja 2010/11/27 149 1427

    : List [1][2][3][4][5][6][7][8] 9 [10]..[40]   [다음 10개]
Name  Subject  Content  

Copyright 1999-2018 Zeroboard / skin by Webdimall

Warning: Unknown(): Your script possibly relies on a session side-effect which existed until PHP 4.2.3. Please be advised that the session extension does not consider global variables as a source of data, unless register_globals is enabled. You can disable this functionality and this warning by setting session.bug_compat_42 or session.bug_compat_warn to off, respectively. in Unknown on line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