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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멘호프 전기-6
LEE Jungkee  (Homepage) 2011-02-03 21:18:29, Hit : 1,346, Rec. : 138

바르샤바에서 자멘호프는 안과의사가 없는 부자 지역이 아닌 드지카 (야만의 뜻) 9번 거리에서 거주하기 시작했다. 그는 돈이 없어서 더 권위있는 안과의사에게 갈수 없는 사람들을 진료했다. 그는 사람들이 그가 어떤 이상한 언어의 창안자임을 잊고, 단지 의사로만 봐주길 바랬다.
그로드노에서의 그의 재정적 상태와 사회적 신분이 바르샤바에서 보다 더 좋았기 때문에, 그에 말을 빌리면, 바르샤바에서의 생활은 '거의 절망으로 미칠 지경' 이었으며 더우기, 매달 자신의 장인으로 부터 돈을 받는다는 것이 그로서는 매우 고통스런 일이었다. 금전적 추락과 에스페란토 운동으로 부터 멀어짐이 그로드노에 대한 향수를 더 하게했다. 왜냐하면, 자멘호프가 태어나서, 4년간의 편안한 그로드노 생활 이후의 바르샤바의 처음은 너무 낯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조금씩 수입이 늘어났다. 이전에는 저녁에 편집하고 서신교환등의 일로 시간을 보냈으나, 지금은 편안히 국제어의 문제점들과 유태인들의 운명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갖었다. 세기가 바뀌면서, 그는 자신의 생각을 두 가명의 작품으로 요약하였다.

'국제어 이념의 본질과 미래 (Esenco kaj estonteco de la ideo de lingvo Internacia)' 는 자멘호프의 가장 광범위한 언어 관련 작품이다. 그 글의 에스페란토판은 처음으로 '언어 에스페란토의 기본 문선 (Fundamenta Krestomatio de la lingvo Esperanto/1903)'에 발표되었다.
부제목 설명에 따르면, 그글은 '파리에서 열린 세계 박람회(1900년)중에 열린 과학의 진보를 위한 프랑스 협회의 대회에서 Unuel에 의해 쓰여지고, 보프롱(L. de Beaufront)에 의해 낭독(형식에 있어서 조금 변경되고 축약된) 된 보고' 라고 되어있다.
루이스 드 보프롱이 공개적으로 그 문장을 읽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가 쓴글이라고 했지만, 1910년에서야 워싱톤에서 자멘호프는 공개적으로 자신의 글임을 고백했다.
가명 Unuel은 유태 사회 활동가 Asher Zvi Hirsch Ginsberg의 히브리 가명 Ahxas ha'Am (백성중의 한사람, 창세기 26장 10절에 따라)을 모방하여 자멘호프가 사용했던 것이었다.

보프롱의 불어판 보고서는 1901년 대회 결과보고서에 실렸다. Fundamenta Krestomatio 에서 발췌한 자멘호프의 문장과 비교해 보면, 불어판에서는 몇가지 지상논전이나 홍보에 관한 부분이 빠져있다. 나중에 에스페란토판에서 번역판이 나왔다: 영어, 불가리아어. 중국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태리어. 일본어, 크로아티아어, 러시아어...

도입 부분에서, 자멘호프는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이념의 순서속에  에스페란토를 넣었다.
사람들은 그 중요한 이념들이 처음 발표 되었을때 불신과 적대적 시선으로 보려한 것이다.
그는 에스페란토를 아메리카의 발견, 증기 기관차의 발명 그리고 알파벹의 도입등의 소위 ' 기술적 발명품'과 비교하였다.
자멘호프는 20세기를 지배하게 될 이성과 과학의 발전을 끝없이 믿었다. 지상논전에 익숙한논리적인 문체에서 그는 스스로 정의한 다섯가지 질문에 따라 문제를 자세히 다루고 있었다. 이 논리에 따라서, 유용하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일은 판에 박힌 사람들의 반대투쟁에도 불구하고 고집스런 목표지향의 의지에 의해 반드시 받아들여질 것이라 보았다.
그는 국제어가 유용하다고 사람들이 우선 이해하게 될것이고, 그것은 이루어 질수 있는 일임을 알게되고, 나중에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연구하게 될것이며, 그리고 마침내 그것은 사회 스스로 또는 국제 대회에 의해 받아 들여질것이라고 설명했다. 언제? 아마도 1년후에, 10년후에, 100년후에 또는 수백년후에, 그러나 다소간 일찍 국제어는 반드시 받아들여질것이라고 내다 봤다.
그의 결론은 이러했다.

1. 국제어의 도입은 인류에게 엄청난 유용함을 가져다 줄수 있을것이다.
2. 국제어의 도입은 절대 가능한 일이다.
3.국제어의 도입은 옛 관습 수호자들의 반대가 강할지라도 의심없이 반드시 다소의 시간적 차이는 있을지라도 일찍 실현될것이다.
4. 국제어로서는 인공어외에 그 어떤 다른 언어도 어느때도 결코 선택되지 않을것이다.
5. 국제어로서 에스페란토외에 그 어떤 다른 언어도 결코 어느때도 선택되지 않을것이다;
   에스페란토는 지금의 언어 형태를 항상 유지하거나, 아니면 그 언어 내부에서 훗날 어떤 수정이 가해 질수 도 있을것이다.

대학 졸업(1884)후 자멘호프는 유태 운동에 있어서 소극적이었지만, 그는 유태 문제의 해결 방안을 찾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17년간의 그의 고민의 결과로 그는 1901년 1월 78쪽의 러시아어 책 ' Gillelizm' 이라는 책을 내놓았다.
Projet resxenija jevrejskogo voprosa (힐렐리즘. 유태 문제 해결을 위한 안)을 가명 'Homo Sum' (나는 인간이다.)으로 발표했다.
힐렐리즘은 헤롯시대에 예루살렘의 유태 최고법원의 원장이었던 랍비 힐렐을 암시하고있다.
몇몇 그의 발언은 황금율(Ora regulo)를 포함하여, Misxnao와 탈무드에 나오는 말로, 그는 하느님의 법률을 이렇게 요약했다: “그대가 원하지 않는 일을 그대의 곁에 있는 사람에게 행하지 말라. 이것이 모든 토라의 말씀이며, 다른 모든것은 단지 해설에 불과하느니라”.
19세기 말의 러시아에서의 유태인의 상황은 변하였다. '힐렐리스모(힐렐리즘)' 발표 20년전 Razsvet 잡지에 기고한 두 글에서 자멘호프는 소상인, 중개인, 수공업자, 공장장이 대부분이었던 앞 시대의 유태인에 대해 썼다. 그들 중에는 자본가나 높은 지성을 갖춘 전문 분야사람은 거의 찾아볼수 없었다.
20세기 초에 들어서면서 거대 자본가와 은행가 중에 다수의 유태인이 있었다. 그러나 가장 극적인 변화는 지식계층에서 일어났다. 수십년 동안 유태인 Kahalo들은 유태인들에게 비종교적 교육을 시행하려는 정부에 대하여 저항하였으며, 유태인들은 훗날 직업에 도움이 되지않는 h^edero에서 계속해서 공부했다. 그러나 Kahalo의 수장들과 랍비의 영향력이 조금씩 약해지면서, 유태인들은 집단적으로 김나지움과 대학에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인구의 약 4%에 불과한 유태인이었지만, 1887년 러시아 대학생의 유태인 비율이 14.5% 였으며, 제한에도 불구하고 1917년 혁명 전가지 12.1%였다. 게다가 많은 유태인들은- 나중에 아담과 소피아 자멘호프도-  외국 대학에서 공부할수 있었다.
그 때문에 러시아에서 대학 학위를 받은 유태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자, 문화 활동가, 과학자, 의사, 금융인, 변호사등. 그들은 페테르부르그, 모스코바 그리고 서 러시아 국경 밖에 있는 주 정부 수도에 거주했다. 그들은 러시아어를 사용했고, 구식의 소상인 유태인과는 거의 연계가 없었다. 그러나, 일세대. 이세대 지식인들은 아직 완전히 러시아 사회에 동화되지 않았다.
H^ibat-Cion의 활동은 점점 영향력을 잃어갔다. 가난한 유태인들은 계속 미국으로 이주해갔으며, 팔레스타인으로의 이주는 적었다. 오스트리아 출신 유태인  Theodor (Binjamin Zeev) Herzl은 자신의 책 '유태 국가, 유태 문제의 현대적 해결의 시도 (1896)' 에서 점진적 이주의 방법이 아니라, 강대국들의 정치적 결정에 의한 유태 독립 국가의 수립을 제안하였다.
그 '유태국가'의 개념에 따라 시오니스토 대회 (1897, 바젤)는 시오니즘 운동의 프로그램을 받아들여, 세계 시온주의자 조직을 결성하고 Herzl를 회장으로 뽑았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유태문제의 몇가지 이론적 해결 방법을 안다. 동화주의란 유태인들이 점진적으로 언어, 문화, 그리고 다른 민족과의 결혼으로 살고있는 나라에 적응해나가 그들의 어린이들이 자신을 그들이 살고있는 나라의 국민이라고 여기는 것을 말한다
20세기까지 동화된 사람들은 자신의 종교를 간직하였으나,  그후 그들은 종교를 잃어버리고, 자신의 종족이나 종교적 소속보다는 현재 살고있는 국가에 속하는것이 더 중요한것으로 생각하게되었다.
시오니즘은 유태국가의 건설이며, 그 유태국가로 전 세계의 유태인들이 모여, 주된 국가로서의 특권과 의무를 갖는 주권국가을 세우는 것이다.
자치주의는 나라마다 다른 민족-문화 자치권속에서 흩어져 살고있는 유태인들의 삶을 의미한다. 1897년부터 1902년 동안 러시아 유태인 Semjon Markovicx Dubnov가 자치주의를 확정하였다. 그에 따르면, 유태인의 나라는 전 세계이다,

왜냐하면 유태백성은 더 이상 히브리어에 의한 종교적 전통을  필요로 하지않고 단지 이디쉬어의 문화와 정신만을 갖는 처음부터 가장 높은 단계의 존재로 왔다는 것이다.
유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른 안이 있었는데, 예를 들면, 유태인들의 다른 민족에로의 동화: 유태인들에게 의무도 권리도 주지 않는 외국인 지위의 인정: 그리고 나치에 의해 실제로 현실이 되버린 '최종적 해결'등이었다.
자멘호프는 1901년 단지 동화주의와 시온주의만 다루었다. 동화주의는 해결책으로 적당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현지인들은 유태인들이 자신들의 이름과 말을 사용하드라도 유태인의 동등한 권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리는 모세의 종교를 믿는 프랑스인, 독일인, 폴란드인' 이라고하는 동화 형태를 자멘호프는 현지인들이 믿지않는 괘변과 허위에 바탕을 둔 타협이라고 생각했다.
그 형태의 앞부분은 거짓이다, 왜냐하면 유태인은 유태인이지, 결코 프랑스인, 독일인, 그리고 폴란드인이 될수 없기 때문이다. 이 형태의 두번째 부분은 옳치않다, 왜냐하면 단지 유태인만이 간직하고 있는 모세의 종교를 갖는 프랑스인, 독일인, 그리고 폴란드인은 존재할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 형태가 옳다고 할지라도, 교육받은 유태인들은 종교적이지 않고, 모세의 종교를 따르지 않았다.
시오니즘 정신의 분석이 이어진다; '우리는 프랑스인, 독일인, 폴란드인... 이 아니며, 유태인들은 종교적으로 뿐만아니라 민족적으로 팔레스타인에서의 독립을 목표로 해야한다'.

자멘호프는 사람들이 단지 전통때문에 유태인을 백성이라고 부를뿐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려 애쓴다. 그에 따르면, 같은 지역에서, 같은 말을 사용하고, 같은 종교를 믿고 그리고 정치적 자주성을 갖는 일단의 무리가 곧 '백성'이라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유태인은 백성이 아니라 단지 같은 종교를 갖은 사람들이다. 고대에 히브리 사람들은 옛 히브리어로 말했고, 그후 그 언어가 종교적 언어가 되었고, 비유태인과 마찬가지로 유태인에게도 어렵고 낯선 언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디쉬어는 동유럽 유태인 일부분만이 사용했던 언어였다.

시오니즘 논제가 거부된후 그는 세가지 이유때문에 유태인들이 팔레스타인에 유태국가를 수립할수 없다고 설명하였다.
1. 팔레스타인은 터키의 통제하에 있으며, 터키가 자기의 영토내에 독랍국가를 세우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것이다.

2. 비록 독립 국가 수립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그 영토가 너무 좁아 9백만명은 현재 살고 있는 나라에 계속 머물것이고, 백만명 미만의 유태인만이 오게 될것이다.  그리고 남아있는 사람들의 입장은 더욱 어려워 질것이다. 왜냐하면, 주 원주민들이 유태인들을 전보다 더 낯설어 할것이고, '당신 나라 팔레스타인으로 떠나라!' 라고 하는 주장이 도덕적 근거가 있게 될것이다.

3. 터키 행정력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은 모든 발자국마다 자신들의 가장 신성한 성지가 있는 강력한 기독교 세계에 귀속하여 질것이며, 크리스트인들과 계속하여 영원히 그 성지 때문에 마찰을 빚을것이다.

유태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사람들은 그것의 원인을 알아야만 한다.
시오니스토들은 그 주된 원인이 2000년간의 추방이라고 말하지만, 자멘호프의 의견에 따르면, 유태인의 그러한 상황은 모든 옛 백성들이 경험한 영토나 자주성의 상실때문이 아니라,  종교에 녹여진 민족성이라고 보았다.


그때문에 유태인은 다른 민족에게 빨려들지도 못하고, 다른 민족을 포용할수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유태인이 비정상적인 민족이고, 모든 다른 나라 사람들로 부터 미움받는 민족으로 남아있게 된 이유라는 것이다. 기독교, 이슬람 그리고 불교는 모든 민족에게 개방적이었지만, 유태교는 유일한 선택된 백성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민족을 차별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히브리 종교에서 민족적인 모든것을 제거해야만 한다. 그러나, 종교를 빠르게 바꿀수 없기때문에, 자멘호프는 먼저 훗날 모든 유태인을 흡수할수 있는 작은 힐렐리즘 공동체의 설립을 제안하였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힐렐리즘은 편협한 휩쓸림에서 벗어나 오래전부터 시대착오적인것이 되어비린 히브리종교의 가슴안에 들어있는 종교적 종파(派)라는 것이다.

그것은 모세의 말씀에 나타난 글자의 해석이 아니라, 몇가지 기본 원칙속에서 형성될수있는  그들의 정신에 의해 해석되어진다는 것이다:

1. 우리는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가장 높은 힘의 존재를 느끼고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이 힘을 우리는 하느님이라 부른다.

2. 하느님은 자신의 법률을 양심의 형태로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넣어두셨다; 그러하니 항상 당신의 양심의 소리를 따르라. 왜냐하면, 그것은 결코 어느때도 하느님의 침묵하는 목소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3. 하느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법률의 본질은 다음의 형태로 표현할수 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그리고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당신도 다른 사람에 그렇게 하라. 그리고 그 행위들이 하느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라고 당신의 가슴속의 목소리가 말하면, 그러한 행위를 숨어서도 하지 말것이며, 결코 어느때도 분명히 그 일을 하지 말라.
언젠가 당신의 선지자들이나 지도자로 부터 모든 나머지 가르침을 듣게 될것이며, 그리고 그 나머지 가르침은 종교의 3대 가르침에 포함되어 있지않고, 그 가르침이 진실일수도, 잘못일수도 있는 인간의 해석에 의해 구성되게 될것이다.

힐렐리스토들의 사원은 '높은 힘'의 본질에 대해, 도덕에 대해, 삶과 죽음에 대해, 인간의 정신과 육체등에 대해 늘 자유롭게 토론하고 질문들을 연구하는 순수한 철학의 사원이 될것이다. 그 언어로서 Homo Sum (자멘호프의 가명중의 하나)은 에스페란토를 제안하였다.
정화된 종교와 에스페란토 언어와 함께, 이 힐렐리스트 집단은 어떤 장소를 선택하게 될것이며, 자신의 원래 조국에서 나와 그들 사이에서 살고자하는 모든 유태인들은 그리로 모일것이다..
힐렐리스모의 최종 목표는 유태인이 전 세계의 사람들과 융화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비록 작은 히브리 집단으로 시작했지만 성공적으로 이룬것처럼 모든 문명세계를 우리의 이상으로 얻을수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 세계에 흡수되기 보다는 우리가 기독교를 흡수 할것입니다. 12)

자멘호프는 자신의 책을 '적은 수의 히브리 지성인'에게 보냈으며, 그 내용을 Nah^um Sokolov의 집에서 있은 '월요 모임들' 중의 어느 날에 발표했다. 그러나 반응은 적었다.  역사는 자멘호프가 실수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 동화주의자들은 미국으로 이민감으로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했다.
- 시오니즘은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승리했다.
- 팔레스타인에서의 유태인에 대한 주 반대자는 기독교인이 아니라 이슬람 세계였다.
- 고대어 히브리어는 현대 생활의 필요에 적응되면서 구화언어로 자리 잡았다.
- 옛 히브리 종교는 이스라엘에서 꽃피기 시작했다.

자멘호프의 힐렐리즘은 그가 유태인에게 알리지 못한 더 높은 목표가 있었다.
그는 볼라픽처럼 사라지지않는 에스페란토를 위한 안정된 사회적인 지지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국제어는 자기 가족의 언어처럼 유산으로 그 언어를 받아드릴 수 있는 어떤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항상 존재할 때만 강해 질것이다. 중립적 언어의 생각을 갖은 수백명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는 다른 사람 수 백만명보다 더 중요하다. 가장 적고 의미없는 소수 국민들의 조상으로 부터 물려받은 언어가, 수 백만명의 사람에 의해 사용되는 백성없는 언어보다는 더 생명력이 보장되고 꺼지지않는 생명을 갖게된다. 그렇다. 나는 히브리 문제의 해결도, 중립적 국제어의 뿌리내림도 힐렐리즘 없이는 가능하지 않을n것이라는 깊은 확신을 갖게되었다.그것은 곧, '중립적 인간'13)의 창조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중립적 인간을 위한 기초에 대해 주저했다. 몇년후 그는 그 주저함에 대하여 이렇게 썼다:

얼마의 시간 흐름속에서, 나는 초창기 힐렐리스토의 모임은 여러 민족의 사람으로 구성할것이 아니라, 이미 힐렐리스토의 성격을 받아드릴수 있는 준비된 전통적 이념을 갖춘, 종족적으로 동질성을 갖은 그룹이 되어야 한다는 강한 확신을 갖었다.

그리고 그러한 방법으로 한 학파의 형태로서 전통을 이어받는, 이미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역사적으로 기초가 튼튼한 단체를 탄생시킬것이다.  그 단체는 자신의 힐렐리스토적인 성격으로 인하여, 정화된 중립적 인간성으로 조금씩 자기 백성을 구하고 나아가 훗날 전세계를 구하게 될것이다.
그런 집단은 오직 하나, 이름하여 히브리 백성만이 될수 있다... 내가 히브리적 힐렐리즘의 생각을 포기하기로 결정하였을때, 비로소 그때 나는 대회에 참가하는 에스페란티스토의 한사람으로서 여러민족으로 구성된 에스페란티스토-힐렐리스토의 분과 14)를 만들것을 제안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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