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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멘호프 전기-5
LEE Jungkee  (Homepage) 2011-02-03 10:18:46, Hit : 1,312, Rec. : 155


에스페란토는 자멘호프의 직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첫째, 그 스스로가 자신의 출판물에 대한 값을 지불해야 했기 때문에 벌어서 자기 가족만 부양하는 다른 동료보다 더 많은 돈을 벌기위해 일해야만 했다.

둘째, 그의 동료가 일에 열중하고,전문적 지식을 쌓고, 광고하는 시간에 에스페란토가 그에게서 많은 시간을 뺏어갔다.

셋째, 언어 창안에 열중하는 의사에게 모든 사람들이 다 진료받기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의 초반의 삶은 실패작이었고 그 스스로 이렇게 쓰고 있다.

에스페란토는 머지않아 나의 아내의 돈의 많은 부분을 삼키게 되었고, 나머지 모든 재산도 앗아갔다. 왜냐하면, 나의 의사 진료비는 몹시 작았기 때문이었다. 1889년 년말에는 한푼도 남지 않았다! 10)

그 집안에서의 실패는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1888년 초, 성(聖) Anna 훈장까지 받았던 마르코 자멘호프는 그해 말 자신의 검열관 자리를 잃게 되었다.
1889년 10월, La Esperantisto 두 번째 호 자료를 준비하여 슈미트에게 보내고, 폴란드왕국에서 러시아로 가서, 가능하면 홀로 성공적인 안과의로서 일할 도시를 찾기 위하여 러시아로 갔다. 1888년 5월 30일(6월11일) 바르샤바에서 태어난 아들 아담과 함께 임신한 부인은 자기 아버지 집에서 살기위하여 카우나스로 갔다.
그로드노 지역인 브레스토(현재의 백러시아)와 비얄리스톡에서의 실패 후 그는 우크라이나 남쪽에 있는 지역 수도인 케르손으로 갔다. 그러나 케르손에는 이미 여의사가 개업을 하고 있어서, 그는 1889년 12월 1일(13일), 카우나스에서 소피아 자멘호프를 낳아 큰 가족이 된 자신의 가족의 빵을 해결하기 위하여 경쟁을 하여야만 했다. 케르손에서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1890년 5월 서른살의 의사는 바르샤바로 돌아와 노블롭프키 21번 가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의 부모들은 무라노브스카 거리에서 계속 살았다).
트롬페트가 제공하는 조금의 급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재정 상태는 나빴으며 가족은 욕심없는 장인 질베르니크의 도움으로 생계를 이어나갔다. 그의 압박감은 1892년 8월 19일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더욱 심했다. 그는 바르샤바에서는 자립해서 가족을 부양할수 없음을 알고, 그 당시 소수였던 러시아인, 백러시아인 그리고 폴란드인과 함께 유태인 거주자들이 많이 살고있던 그로드노로 이사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1893년 10월 22일, 자멘호프는 그로드노 주정부 의료부처에 그 도시에서 의료 행위를 하기 위한 서류를 제출하였다. 허가서를 받고, 시작이 희망적이라고 생각한 자멘호프는 한달후 바르샤바로 되돌아와 11월 27일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몇 년동안 폴란드의 수도를 떠나게 된다.

그로드노에서 자멘호프는 그의 안과 진료소가 있는 도시 중심의 거리인 Policejskaja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로도노에서의 그의 수입은 바르샤바에서의 그것보다 더 컷으나, 그의 삶의 의미는 덜했다.
자멘호프는 이 도시에서 오래 살고자 했으며, 개인 진료실을 갖은 의사로서 권위있는 ‘그로드나 지역 년감’에 뚜렷이 등재가 되었다. 바쁜 의료 행위와 에스페란토 일 외에, 그는 그로드나 지역의 의사협회에서 활동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다른 영역에서도 활발하게 움직였다. 그는 그로드노 지역 재판소의 심판원으로도 활동했다. 그는 재판 절차에도 참여했으며, 원칙과 엄격함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1896년 6월 24일 군 예비의사로서 전쟁이 일어나면, 그로드노 지역에서 군의관으로서 의무를 다 할것 임을 서면으로 제출하였다.

더 나아진 경제 상태와 함께, 더없이 평안한 상태에 있었던 자멘호프는 자신의 꿈이었던 국제어 에스페란토의 도서실을 실현하기로 결심하였다. 그의 도서실의 첫 번째 작품은 ‘덴막의 왕자, 햄릿’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도전이었다. -아직 그 언어의 구조에 대해 계속 토론중인 언어 에스페란토로  생각하게 하는 뉴앙스가 풍부한 유명 작품을 번역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알려진’작품, 원작이던, 자신의 언어로 (다른 언어이던) 번역되는 작품. 세계의 모든 김나지움에서 공부하는 작품. 수천번에 걸쳐 유명한 배우에 의해 수백개의 연극장에서 공연되고, 수십개의 언어로 공연되었고, 공연되고 있고 공연될 작품.  
러시아 변방의 알려지지도 않은 안과의사는 그 도전을 받아들였다. 에스페란토판 햄릿을 처음 읽어본 사람들은 그 물 흐르는듯하고, 이해하기 쉽고 신뢰감이 가는 번역에 놀라고 말았다. 햄릿 번역 작품 때문에 몇몇사람은 이 언어의 수정에 대해서는 무관심해졌고, 그들은 이미 이 언어가 매우 훌륭히 기능을 하고 있고, 독자중의 한사람은 '에스페란토로 된 햄릿을 읽고 그 어떠한 노련한 이론적 충고'11)보다 더 감화를 받았다고 쓰기도 했다.
햄릿의 그늘속에 자멘호프에 의해 저술되고 번역된 모든 다른 작품들과, 그로도느에서 최종 준비된 'Ekzercaro (연습모음집)' 와 같은 도서실에서 준비된 작품들은 출판사 'Hachette'와 잡지 'La revuo'의 시대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야만 했다. 그렇치만, 'Ekzercaro (연습모음집)'는 많은 모범적 문장 때문에 매우 중요했다: 나중에 그것은 'Fundamento de Esperanto (에스페란토의 기초)'의 구성부분 중의 하나가 되었다.
자멘호프는 그로드노에서 4년을 살았다. 초기의 진료소 번성의 기간이 지나고 경제적 어려움이 닥쳤다. 왜냐하면, 그 도시에 다른 한명의 안과의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장인 질베르니크는 그의 손자들이 그로드노가 아닌 수도인 바르샤바에서 교육 받기를 원했다. 질베르니크는 마침내 바르샤바에서 어느 정도의 자립을 이룰 때 까지 에스페란토를 잊고 오로지 진료에만 전념하도록 자신의 사위를 설득했다.
자멘호프는 조금씩 에스페란티스토로서 소극적이 되고, 단지 ‘주소록’의 발간을 계속하면서 꼭 필요한 서신교환만 했다.
Esperantisto지의 폐간이후 그는 도서실에서의 작업도 멈췄다. 몇달 동안 에스페란티스토들은 잡지없이 살았다. 1895년 12월 스웨덴에서 출범한 Lingvo Internacia가 있었다. 자멘호프는 수시로 문장들을 보냈으나 그는 그 잡지의 출판 방침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 그로드노에서의 마지막 시도는 ‘국제어의 질문에 대한 언급과 결정을 위한 서면 대회’ 이었다. 자멘호프는 1897년 초에 러시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로된 대회 회람을 6천개의 잡지사와 다양한 세계어 대표자들에게 보냈다. 그러나, 단지 몇 사람만 신청함에 따라 그 대회는 개최되지 않았다.
1897년 10월16일 그로드노를 떠나 바르샤바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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