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급반/Baza kurso

 Login  Join

:: 자멘호프 전기-1
LEE Jungkee  (Homepage) 2011-01-30 13:35:14, Hit : 1,548, Rec. : 143

[1]
에스페란토의 창안자 '라자르 마르코비치 자멘호프(Lazarj Markoviĉ Zamenhof)'는 1859년 12월 3일 (그레고리아력으로는 15일), 그 당시 그로드나(Grodna)주의 행정구역 중심이었던 비얄리스톡(Bjalistoko)에서 태어났다.
그로드나주는 러시아의 행정관리지역이었다. 그 도시는 폴란드 왕국 밖에 위치하고 있었다.-그 땅을 비엔나 회의(1815년)가 러시아 제국에 바쳤던 것이다. 폴란드왕국은 러시아와는 인적 동맹(persona unio)관계였으며, 러시아의 황제가 동시에 폴란드의 왕이었다.

19세기 후반에 비얄리스톡의 주민의 대부분 (65~75%)을 차지한 유태인과 소수의 폴란드인, 러시아인, 독일인 그리고 백러시아인들이었다. 주변 마을에는 대부분 백러시아인과 폴란드인이 살고있었다. 그 도시에서 섬유 산업이 급진적으로 발달하였기 때문에 북 멘처스터라는 별칭으로 불리어졌다. 비얄리스톡의 공장주와 상인들의 90%가 유태인이었다.

자멘호프가족도 유태인이었다. 그의 아버지 Mark (히브리어로 Mordeĥaj, 이디시어로 Mordĥe, Mordka, Motl, Motel; 폴란드어로 Marek)  Fabianviĉ Zamenhof 는 1837년 Fabian (히브리어로 ŝarga, 이디시어로 Fajvuŝ, Fajba, Fajvel) Volfviĉ 가문과 Rajna Percovna Zamenhof 가문 사이에서 폴란드왕국의 주(州) 수도인 Suwalki에서 태어났다.
그 가족은 훗날 (티코친에서 몇년 머뭄) 비얄리스톡으로 이주하였는데, 그곳에서 마르코 자멘호프(Mark Zamenhof)는 Ŝolem Sofer의 딸 Liba Roĥla (Raŭela) Sofer 와 결혼하였다. 그들은 유태인들로부터 Jakte-Gas (고기 가게 거리)로 불리우는도시의 중심 거리인 지엘로나(Zielona ; 녹색의 뜻)에 있는  목조건물 6호의 안 마당 날개쪽에 살았다.
언급한바와 같이 1859년 12월 3일 할례의식에서 히브리 이름 Eliezer 를 받은 그들의 첫번째 자식이 태어났다.  이 이름은 단지 내부 종교 생활에서만 쓰였지만 유태인들의 일상생활에서 이디시어 형태로 Lejzer로 불리었다. 그는 러시아 시민으로서는 Lazarj Markoviĉ Zamenhof 로 불리었으며, 그 이름이 유일한 공식 이름 형식이었다: 개인 이름, 아버지 이름, 가족 이름. 히브리어로는 Eliezer, 이디시어로는 Lejzer, 폴란드어로는 Ludwik, 프랑스어로는 Louis 등으로 각각의 언어로 민족어 형태들을 갖고 있었다.

자멘호프는 자신을 러시아 유태인이라 했지만, 그것은 정확하지 않다. 왜냐하면, 러시아에는 몇몇 그룹의 유태인들이 살았기 때문이었다 (kaŭkazaj, krimeaj, buĥaraj...). 자멘호프는 리투아니아 그룹이었다. 한때 리투아니아 지역에 살았던 이 aŝkenaza 그룹은 이디시어(litviŝ jidiŝ)의 북동지역 사투리를 사용하였으며, 빌리니우스를 자신의 수도로 생각했다. 리투아니아 그룹은 지리적으로나 방언으로 볼때 다른 러시아 유태인과는 구별이 되었다.
그들중에는 우크라이나와 남 폴란드에서 꽃피었던 ĥasidismo의 소수 추종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Haskala 계몽운동'은 폴란드 유태인들 사이에서 보다 리투아니아 유태인 사이에 더 많은 추종자들이 있었다. 자멘호프는 여러차례 자신의 민족 소속에 대해 설명하였다. 예를 들면:

... 나는 히브리인이며, 모든 나의 이상(理想)들, 그 이상의 탄생, 성숙 그리고 끈질김, 나의 대 내외적인 지속적 싸움의 모든 역사- 모든것들은 이 나의 히브리 정신과 나누어 생각할수 없게 연결되어 있다. 나는 결코 내가 히브리인임을 숨긴적이 없으며, 모든 에스페란티스토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다; 나는 내가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그렇게 많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싸워왔던 백성의 한사람임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민족의 모든 역사적 사명은 "하나의 신"을 향한 목표 속에서, 민족들의 하나됨에 있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바로 전 인류를 위한 하나의 이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만약 내가 게토 출신의 히브리인이 아니었드라면, 인류의 하나됨에 대한 생각은 나의 머리속으로 전혀 들어오지 않았거나, 나의 모든 삶이 계속되어 오는 동안 결코 어느때도 그렇게 집요하게 나를 지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류의 흩어짐의 불행을 게토 출신의 히브리인 만큼 그렇게 강하게 느낄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 내가 가장 이른 어린이때 부터 나를 하나의 중요한 이상과 꿈을 위해 바친 그 중요한 원인은 바로 나의 히브리 정신이었다.- 인류의 하나됨에 대한 꿈을 향하여.
이 이상은 나의 모든 인생의 본질이요, 목표이고 에스페란토는 이 이상의 단지 한 부분일 뿐이다.- 나머지 모든 부분에 대해서 나는 생각하고 꿈꾸는 것1)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한 자기정체성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그당시 Dreyfus 사건이 일어났던 프랑스에 살고 있던 에스페란토 운동의 초기 지도자들은 자멘호프의 국적을 숨기고 그를 바르샤바의 의사로 발표하였다.

1905년 블로뉴 수르 마르(Bulonjo-ĉe-Maro)에서 열린 첫번째 에스페란티스토들의 세계대회 후에, 파리 에스페란티스토 에밀 쟈발(Emile Javal)은 자멘호프에게 쓴 편지에서, 그 대회와 관련하여 보도된 에스페란토에 관한 700개 이상의 글중에서 단지 한 기사만이 자멘호프가 유태인임을 언급하였다고 썼다. "최초의 에스페란토 역사가" 인 Adam Zakrzewski 를 포함한 폴란드 에스페란티스토들은 자신들의 입장에서 그를 폴란드인이라고 발표하고자 했다. 왜냐하면, 자멘호프가 오랫동안 바르샤바에 살았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유태인들의 주요 직업은, 사업, 수공업, 상업 그리고 의업이였다. 500만명의 러시아 유태인중 단지 5만명만이 고용된 노동자들이었다. 유태 노동자들중 75%가 수공업자 또는 상인이었다. 에스페란토의 창안자 자멘호프의 할아버지 파비안 자멘호프(Fabian Zamenhof)도 소상인이었으며, 그의 일을 두 아들중 큰 아들인 요셉 볼프(Josef Volf)가 이어 받았으며, 더 젊은 아들 마르코는 공부를 선택했다. 그는 비얄리스톡에서 부자 가문이었던 Zabludowski씨 의 도서 사서겸 언어교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그는 유태 소녀들을 위한 사립학교를 세웠으며, 그는 그 학교에서 언어를 가르쳤다. 1866년 4월 그는 러시아어와 수학을 비얄리스톡에 있는 제 2 국립 유태학교에서 가르쳤으며, 러시아 국가 공무원급에 이르게 된다. 비얄리스톡에서 마르코 자멘호프는 두권의 책을 저술했는데, 바르샤바에서 출간되었다 ; '초등학생을 위한 일반 지리의 준비 학습(1869)'과  '러시아 청년을 위한 독일어 학습 교재(1871)' 이다. 마르코 자멘호프는 자신이 속한 종족과 국가의
소속을 성공적으로 결합할수 있었다. 훗날 세계 시오니즘 협회의 회장이 된, 바르샤바의 히브리어 잡지 Hacefira (Hazefirah: 시대, 또는 여명의 뜻) 의 편집장인 Nahxum Soklov는 그에 대해 정확히 요약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는 두개의 세계에 속해있었다: 자신의 생활화 되어버린 일상에 따른 전통수호적이며, 존경받는 정통파 (patriarkala-ortodoksa)의 세계와, 동시에 의식적으로 그가 동정을 느끼고 있던 동화 성향(asimilacia)의 세계가 그것이었다.
두개의 문화적 성향과 두개의 삶의 영역사이에서의 내적 영혼의 싸움이 그를 비극적인 모습의 아버지를 만들었다... 그는 유태지역에서는 많이 교육받은 사람이었으며, 뛰어난 히브리학자였으며. 깊은 지식의 탈무드주의자였지만, 단지 종교적 소속 2)만을 갖은채 당시 국가통치 문화에 유태 대중들이 가입토록 권한 문화 운동 Masikiloj (히브리어로 '지식 성향인들')에 속해 있었다."

젊은 Lazarj의 집과 학교에서의 언어는 러시아어였으며, 러시아어가 그의 전 인생에서 집 안에서의 언어로 자리 잡았다. 그는  러시아어 시인이 되기를 꿈꿨고, 열살때 5막의 비극 작품을 쓰기도 했다. 1870년 그는 비얄리스톡 김나지움의 1학년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비얄리스톡에서, 자멘호프 집안은 여덟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셋은 어려서 죽었고, 1873년 자멘호프 가족들이 비얄리스톡을 떠날때는 부모, 세 아들 그리고 두 딸이 있었다.


  : Rec.   : List

931   자멘호프 전기-10    LEE Jungkee 2011/02/08 135 1419
930   자멘호프 전기-9    LEE Jungkee 2011/02/07 142 1428
929   자멘호프 전기-8    LEE Jungkee 2011/02/06 150 1370
928   자멘호프 전기-7    LEE Jungkee 2011/02/05 193 1410
927   자멘호프 전기-6    LEE Jungkee 2011/02/03 138 1352
926   자멘호프 전기-5    LEE Jungkee 2011/02/03 155 1313
925   자멘호프 전기-4    LEE Jungkee 2011/02/02 143 1339
924   자멘호프 전기-3    LEE Jungkee 2011/02/01 143 1365
923   자멘호프 전기-2    LEE Jungkee 2011/01/31 143 1374
  자멘호프 전기-1    LEE Jungkee 2011/01/30 143 1548
921     이 책에 대하여    LEE Jungkee 2012/10/25 87 574
920   '좋은 생각' 을 읽다가,    LEE Jung-kee 2011/01/29 140 1161
919    Esperanto kaj mi (에스페란토와 나)    LEE Jung-kee 2011/01/23 156 1502
918   Esperanto, kiu estis cxio por mi en mia vivo    LEE Jung-kee 2011/01/23 198 1313
917   Robert Frost 의 시 감상    LEE Jung-kee 2010/12/25 144 1345
916    Eĉ birdoj pepis esperante en la Zamenhofa ta...    LEE Jung-kee 2010/12/17 151 1438
915   Du leteroj de L. L. Zamenhof    LEE Jung-kee 2010/12/11 148 1257
914   [시 감상]Se mi estus rozo / 내가 만약 장미라면    LEE Jung-kee 2010/12/10 155 1314
913   Mazara del Vallo volas iĝi ĉefurbo de Es...    LEE Jung-kee 2010/12/09 149 1301
912   자멘호프박사 사진들    LEE Jung-kee 2010/12/07 140 1244
911   Letero al Kofman    LEE Jung-kee 2010/12/05 157 1217
910   Nova malnova letero de Ludoviko Zamenhof    LEE Jung-kee 2010/12/05 149 1247
909   Unu letero de Zamenhof    LEE Jung-kee 2010/12/05 169 1235
908   Al Sro de Beaufront    LEE Jung-kee 2010/12/05 152 1216
907   Enigmoj de Ludoviko Zamenhof    LEE Jung-kee 2010/12/05 157 1285
906   Du leteroj de L. L. Zamenhof    LEE Jung-kee 2010/12/05 159 1202
905   [단국대학교(죽전) 목3.4 도예과 32100391 조희선] Mi volas....    조희선 2010/11/27 145 1709
904   [원광대학교 수7,8] 한의예과 20092690 노지현    노지현 2010/11/26 184 1487
903   [단국대학교 천안 화 3,4] 법학과 52090490 윤보라    윤보라 2010/11/26 152 1451
902     [re] [단국대학교 천안 화 3,4] 법학과 52090490 윤보라    CHO Myoung-ja 2010/11/27 152 1447

    : List [1][2][3][4][5][6][7][8] 9 [10]..[40]   [다음 10개]
Name  Subject  Content  

Copyright 1999-2019 Zeroboard / skin by Webdimall

Warning: Unknown(): Your script possibly relies on a session side-effect which existed until PHP 4.2.3. Please be advised that the session extension does not consider global variables as a source of data, unless register_globals is enabled. You can disable this functionality and this warning by setting session.bug_compat_42 or session.bug_compat_warn to off, respectively. in Unknown on line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