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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멘호프 전기-12
LEE Jungkee  (Homepage) 2011-02-10 15:29:46, Hit : 1,569, Rec. : 148

에스페란토 공식 역할을 벗고, 자멘호프는 이념적 영역의 일을 시작할수 있었다. 이미 더 일찍, 1910년 말, 그는 런던에서 개최된 인종 대회(Kongreso de rasoj)에 보낼 '종족과 국제어'라는 제목의 강연 원고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종족간의 분열과 증오의 원인은 정치, 경제, 지리, 해부학, 마음 또는 출신에서 오는것이 아니라, 그 중요한 원인은 언어와 종교의 다름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인류가 하나의 언어, 하나의 종교를 갖을때만 종족간의 분열, 증오가 인류로 부터 완전히살아질것이다" 라고 보았다. (27
그러나, 하나로 된 종족의 인류 형성은 가까운 미래에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종족언어와 종족 종교를 자신의 언어나 종교의 내적 삶에 간직한채 모는 종족간의 관계를 위하여 중립적인 언어을 사용하고, 사람들이  윤리와, 도덕 그리고 중립적 인간의 삶을 유지"하면서 살아가자는 것이다.(28
종교문제를 자세히 다루지 않고, 그는 에스페란토를 위해 변론했다.

자멘호프는 1911년 7월 26일부터 29일까지 3000명이 참석한 그 대회에 가지 않았지만, 그의 원고는 멋진 대회 책자에 실렸다.(29
언어로 인한 분열 해결 방법을 제시한후, 크라코바 대회이후 자멘호프는 종교 분열 해결책을 내놓았다.
1913년 그는 10차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와 연계하여 파리에서 중립적-인간의 종교를 위한 대회를 개최할것을 제안했다. 그의 의견은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종교만이 진리며 신으로 부터 주어진 종교라고 믿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사상가들, 부모의 종교를 떠난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의 선언의 4가지 주제중 세가지는 인류인 주의의 종교적 신념을 따랐고, 네번째 주제는 조직의 문제였다. 파리의 에스페란토 운동 지도자들이 그의 계획을 받아들이지 않음에 따라, 그는 파리에서 열리는 에스페란토 대회후에 베른에서 별도의 작은 대회를 개최키로 결정했다.

같은 해 그는 ‘인류인 주의의 선언’ 이라는 새로운 글을 내놓았는데, 그것은 자신의 이름이 서명된 최초의 선언이었다. 문장은 조금 바뀌었는데, 특히 종교 부분에서 사원이 사라진 대신에 자유 신앙자를 위한 공동체가 추가되었다. 구체적인 ‘중립적-사람들의 국가 이름들’이 사라졌다. 서문에는 러시아와 불로뉴대회에 관한 언급이 없었다.
그는 한 나라나 도시에서 ‘그 주민들의 다수가 사용하고있는 문화 언어’나 나랏말이 중립적 인 역할을 할수있다는 점과, 중립적 인간의 언어는 다양한 종족 사이에 다툼이 있는 곳에 추천될수 있음에 동의했다.

제 9차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베른, 1913)에서 자멘호프는 처음으로 단순한 대회 참가자로 참석했다. 대회의 주 연설은 유명한 언어학자 Ferdinand de Saussure의 형제인 스위스 과학자 Rene de Saussure 가 했다. 베른 세계대회 2주일전, 1913년 8월 12일 Carlo Bourlet가 사망했다. Bourlet의 사망은 자멘호프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영향력이 사라짐에 따라 Hachette출판사는 에스페란토에 대한 관심이 떨어졌으며, La Revuo (1913.9~1914.8)도 8호로 막을 내렸다. 자멘호프는 1914년 8월 그의 주 수입원이 없으졌고, 자신이 번역한 성경이 Hachette출판사에서 발간되지 못하게되었음을 알게되었다. 그는 새 출판자를 찾아나섰다. 마침내 자멘호프가 번역한 구약 성경은 영국및 해외 성경협회가 출판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구약 성경 번역하는 일은 그의 모든 자유 시간을 앗아가, 그는 다른 에스페란토 일은 거의 손을 놓아버렸다. 그러나, 적어도 두가지 일에 대해서는 그의 입장을 밝혀야만 했다.
1914년, 파리 에스페란토 세계 대회에서 창립될 예정인 히브리 에스페란토 협회에 사람들은 자멘호프가 가입할것을 제의했다. 자멘호프는 그 이념은 지지했으나, 인류인 (homarano)으로서 그는 그 어떤 종족이나 종교에 자신을 연결짓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자신의 결정을 밝혔다.

" 나는 모든 민족주의는 단지 인류에게 가장 큰 불행을 안겨준다는 사실과 모든 사람들의 목표인, 조화로운 인류를 만들기 위해서는, 인류를 종족이나 종교에 따라 나누지 않고, 지역에 따라 나누어 한다는 사실을 깊히 확신하게 되었다.
억압받는 종족의 민족주의는 자연스런 자기 방어적 반작용으로, 억압하는 민족의 민족주의보다 더 많이 용서해야 한다는 주장은 옳다. 그러나 만약, 강자의 민족주의가 비열하고, 약자의 민족주의가 판단력이 없다면, 그리고 만약, 우리 모두가 자신의 소속 집단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없거나, 완전한 중립적인 입장에 서려고 애쓰지 않으면, 그 두 집단은 억압자와 피억압자로 나뉘어져 그러한 상황을 낳고, 인정하게되어, 잘못된 불행의 챗바퀴속에서 인류는 결코 뛰쳐나오지 못할것이다.

나의 민족의 가슴을 찢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내가 히브리 민족주의와 나를 연결시키지 않으려는것이 그 원인적 이유이며, 나는 사람 사이의 ‘절대적’ 정의를 위해 일하기를 원한다. 그렇게 함으로서 나는 민족주의의 추구로서 보다 더 많은 선을 나의 불행한 민족에게 가져다 줄수 있으리라 깊히 확신하게 되었다." (30

폴란드에서는 반유태주의가 점증했다. 그러한 성향이 잡지 Pola Esperantisto 에 스며 들어가, 그 잡지 1914년 5월호에 폴란드 작가, 번역가이며 에스페란티스토이기도 한 과학자 Andrzej Niemojewski 가 쓴 '폴란드인들과 히브리인들(Poloj kaj Hebreoj)'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가장 자멘호프를 불쾌하게 했던 것은 그 기사 자체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런 비슷한 기사가 폴란드에서는 자주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Pola Esperantisto 의 편집자인 바르샤바출신 기자 Leczyslaw Czerwinski 가 탈무드를 ' 히브리인 외의 모든 사람에게는 미신과 증오의 무서운 책'이라고 쓴 글이 자멘호프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자멘호프는 Pola Esperantisto 에 항의글을 보냈다.  Czerwinski기자는 그 항의글을 개재하지않고, 단지 6월호에 '탈무드 수호자들의 반 문명성을 분명히 보여주는 유태인들'로 부터 몇몇 항의글을 편집실이 받았음을 밝히고, 탈무드에 대한 공개적인 전쟁을 선언하였다.

그 반유태인 잡지의 기사 후에 몇주만에 다른 전쟁이 선포되었다.- 제 1차 세계 대전.
자멘호프와 그의 부인은 파리로 가는 도중 적국 러시아의 시민이었기 때문에, 독일에서 저지당하여, 두사람은 바르샤바로 되돌아 오기위하여 스칸디나비아와 페테르부르그를 2주나 걸려 돌아야만 했다. 파리에서 열릴 예정이던 세계 대회는 열리지 않았다.

전쟁으로 인하여,중립적 인간의 종교 대회는 연기되었으나, 이미 자멘호프는 1914년 9월 9일 스위스 에스페란티스토와 프리멘손회원인 Friedrich Uhlmann에게 1915년 대회를 스위스에서 열자고 제안한바 있었다. 그리고 그 대회에 에스페란티스토뿐만 아니라, 인류의 화합을 바라는 모든 사람을 초청하자고 했다.
자멘호프는 Rene de Saussure와 연락해 보라는 Uhlmann의 조언에 따라 10월 18일 Saussure에게 부모의 종교적 신앙은 잃어버렸으나, 모든 종교 공동체 밖에 머물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종교 원칙을 세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중립적-인간의 종교 대회에 대한 자신의 구상과 공동체 설립을 편지로 밝혔다.

마침내 1914년 자멘호프는 외교관들에게 보내는 자신의 호소문 '세계 대전 후에(Post la granda milito)'를 발표하였고 그 글을 몇몇 에스페란티스토 편집자들에게 보내 에스페란토와 민족어를 그것을 보도해줄것을 요청하였다. 그는 전쟁후 외교관들이 유럽의 지도를 다시 제단할 것임을 예견하고 유럽 연합 국가 (Unuigxinta Sxtato de Euxropo)의 설립을 제안하였다. 그것이 실현될수 없음을 이해하면서도, 그는 최소한 그 선언을 전 유럽 나라에 알리고, 그 원칙을 보장 받기를 요청하였다.

" 모든 나라는 도덕적으로 물질적으로 완전히 그리고 평등하게 모든 자신들의 자녀들에게 속한다".
마침내, 그는 미래의 평화 회의에서 다음의 법률을 제정해 줄것을 제의하였다.

1. 모든 나라는 도덕적으로 물질적으로 그 어떤 언어, 종교 또는 출신이던 간에 토착민과 토착화된 사람들에게 속한다; 그 어떠한 종족도 그 나라에서 다른 종족보다 더 많은, 또는 적은 권리나 의무를 가져서는 않된다.

2. 모든 국민들은 그가 원하는 언어 또는 방언을 사용할 완전한 권리가 있고, 그가 원하는 종교로 고백할수 있는 권리가 있다. 다만, 특별히 한 민족만을 위한 공공 기관이 아닌 경우, 주민들의 공통된 합의에 따라 선택된 언어가 그 나라의 언어로 받아 들여진다. <....>

3. 어떤나라에서 일어난 모든 부당한 일에 대하여, 그 나라의 정부는 모든 유럽 나라의 동의에 의해 설립된 ‘상설 전유럽 재판소’ 앞에 책임을 진다.
4. 모든 나라와 모든 주정부는 어떤 종족의 이름이 아니라, 모든 나라의 공통의 동의를 얻은 중립적인 지리적 이름을 갖어야만 한다. (31

외교관에게 보내는 호소문 발표 이후, 자멘호프는 에스페란토에 관심을 집중하면서, '에스페란토의 일상적 수정'의 과제를 준비하였다.그 언어를 발표하기전, 그 언어를 작업하면서 그가 미쳐 알지못했던 편리하지 못한 부분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28년에 걸친 에스페란토의 실질적 기능은 모든 불편한 점을 드려내는데 충분한 시간이라고 그는 생각하였으며,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불편한 점은 결코 앞으로도 발견되지 않으리라 "믿었다.
만약 에스페란티스토 스스로가 에스페란토의 모든 부분에 대해 검사를 하지않아, 훗날 어떤 정부가 에스페란토를 받아드리기로 하고, 에스페란토의 수정을 에스페란티스토가 아닌 능력 없는 학자에게 맡길수 있음을 염려했다.

이것이 모든 에스페란티스토에게 보내진 자멘호프의 마지막 글이다.

"우리는 데모클래스의 칼(신변에 따라 다니는 위험의 뜻)' 처럼 늘 우리 언어 위에 달려있는 어려운 질문에 대하여,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에스페란토의 모든 부분을 매우 주의깊게 그리고 자세히 검사해 보아야 합니다." (32

전쟁은 자멘호프의 삶을 혼란케했다. 1914년 11월 22일 그는 심장 마비를 맞았다. 회복후, 그의 아들 아담이 낮에 환자를 보고, 자멘호프는 오후에 두시간만 진료를 하는 방법으로 일을 나누었다. 그때부터 자멘호프는 아침에만 에스페란토 일을 하고 밤에는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았다. 1915년 3월, 그는 구약 성경의 번역을 마치고 안데르센 동화를 독일어에서 에스페란토로 옮기는 작업을 시작했다.
1915년 7월, 자멘호프부부는 ‘야만의 거리’에 있던 자신의 거주지를 떠나,더 안락한 이름의 ‘왕궁 거리 Krolewska’거리에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자멘호프는 자신의 남은 여생을 중앙 도시공원에 가까운 바르샤바에서 가장 좋은 구역인 41번가에 7개의 방이 있는 아름다운 집 3층에서 살았다.
아들 아담이 ‘야만의 거리’에 있는 진료소 일을 맡았지만, 자멘호프는 자신의 일을 멈추지 않고 적은 수의 환자만 진료했다.
이사후 며칠만에 러시아 군대가 바르샤바를 떠나고 독일군이 도시를 점령하였다. 인류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모든 인생을 바친 자멘호프로서는 그 전쟁의 상황이 그를 슬프게 했다. 많은 에스페란티스토들이 전장터에서 죽어나갔다. 열렬한 시오니스토였던 그의 가장 어린 동생 알렉산드라(1916. 7.18)의 죽음으로 자멘호프는 괴로워했다. Hxarkova 지역에 살고있는 아저씨 Konstantin Zilbernik의 곁에서 일을 시작했던 딸 소피아가 자멘호프를 돌보았다. 그후 러시아군대의 철수후 독일군이 점령해버린 바르샤바로 돌아오지 못하다가, 1922년에야 그녀는 돌아왔다.
에스페란티스토의 생명이 전쟁동안 죽어갔다. 단지 몇몇 에스페란티스토들만이 왕궁거리를 찾아왔다. 방문객중에는 Leo Belmont, Odo Buwid, Edward Wiesenfeld그 리고 독일군 바르샤바 항만 책임자였던 Paul Neubarth 소령이 있었다. 1916년 8월부터 Antoni Grabowski는 정기적으로 자신의 번역인 아담 미케비츠의 작품 ‘Sinjoro Tadeo’의 부분을 읽기 위하여 그를 방문하였다.  
자멘호프는 자신의 인류인주의 안에 대한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2개월 전, 그는 자신의 마지막 글을 독일 변호사 Ludwig Schiff에게 보냈다.
그는 Ludwig Schiff가 그것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Saussure에게 보내 프랑스어로 번역하게 한 다음, 그 글을 세계 중요 잡지사에 보낼 것을 요청하였다.
이 글도 서문과 선언문(52~59 쪽 참조)으로 되어있었다. 서문은 에스페란토주의와 인류인주의사이의 명확한 구분을 말하여 주고 있는데, 전혀 새로운 원칙을 보여주고 있다.

" 인류인주의라는<...> 이름아래 나는 인간성을 위하여, 종족간의 증오와 부당함을 제거하기 위하여, 인류의 정신적 통합을 위해 이론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조금씩, 조금씩 이끌어 낼수 있는 그러한 삶의 방식을 향한 노력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33
인류인주의 초판에서 보여주었던 '중립적으로 하나의-인간 다운 국민'으로 인간들이 언젠가 융합될것이라'는 그런 내용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않은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인간의 정신적 통합‘을 향한 노력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4편의 글(Hilelismo 1906, Homaranismo 1906, Homaranismo 1913, Homaranismo 1917)을 분석해보면, 자멘호프는 언어문제에 대해서는 늘 덜 관심을 갖었었다.
에스페란토는 1913년과 1917년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으며, 1917년에는 중립적-인간의 언어에 대한 언급 조차 없었다. 그의 목표이 바뀌었다. 첫번째 전 세계를 향한 제안 (Hilelismo 1906)은 러시아 유태인에 대한 염려가 담겨있었으나, 그 염려는 그후 사라졌다.
  Homaranismo의 마지막 글을 자멘호프는 에스페란토계가 아닌 전 세계로, 에스페란토로가 아니라 가장 영향력있는 민족언어들로 알리려고 했다.
실로, 인간성을 위한, 종족간의 미움의 제거등의 노력이, 인류의 정신적 통합이 언어나 종교의 통일/통일화 보다 더 일반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인류인주의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마지막 귀절: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해주기를 바라는데로, 당신도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행하라.)은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의 문제인 것이다.

언급된 원칙(인류인주의에 함축되어 있지만 직접 언급되지않은 '관용'도 포함하여)의 실천과 인간성을 향한 노력이 언어나 종교의 문제가 그리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보통의 '진보적인 사람들' 처럼 에스페란티스토나 종교인들이 그렇게 인류인 주의에 대해 매력을 갖고 있을까 하는 점이다.
그가 죽기 몇주전, 그의 갑작스런 신앙이 많은 비판을 가져올 것이라는것을 미리 알았지만  스스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 자신의 마지막 수필 '신과 불멸에 대하여' (Pri Dio kaj pri Senmorteco)를 썼다. 아쉽게도, 종교적 신앙과 관련하여 자신의 아주 어린 시절의 한줄 짜리 글만이 서문에 들어 있을 뿐이었다. 그외에 오른쪽 여백위에 내용의 요약과 두 문장이 있었다:

"나는 아마도 사라짐이 아니라, 아마 죽음이 기적이라는 것을, 자연속에 어떤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을, 무언가가 우리를 어떤 목표를 향하여 이끌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모든사람들은 사실상 흐릿하게 믿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삶이 동물의 삶과는 다르기 때문에". (34

그것이 그의 이념적 작품 가운데 마지막(미완)으로 남아있다. 자멘호프는 그 글에서, 그가 "많이 생각하고 다양한 과학과 철학 서적을 읽었지만" 그러나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무슨책을 말하는지는 모른다. 그의 초창기의 글들은  꺼져가고있는 Haskala의 사상,  Pinsker 의 동화주의, 자기 해방, Dubnov 의 자치주의, Herzl 의 정치적 시오니즘, 그리고 특히 Ahxad ha'Am의 정신적 시오니즘등에 영향을 받았다.

자멘호프의 정신은 프랑스 혁명의 이상, 미국의 '용광로', 러시아의 우주주의, 전세계주의, 기독교의 선교주의, 프리메이슨주의, 바하이주의등과 다양한 수준의 동류관계라 할수 있다. 사람들은 러시아 철학자이며 시인인 Vladimir Solovjov, 독일의 유태인 철학자  Hermann Cohen, 프랑스 철학자 Auguste Comte의 영향을 주목하기도 한다.
자멘호프는 쓰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약해졌기 때문에, 자신의 마지막 연구를 마치지 못하였다. 독일에 점령된 바르샤바에서 Lazarj Markovicx Zamenhof 의 심장은 1917년 4월 14일 오후 멈추고 말았다.
자멘호프는 떠났지만, 그의 아이들 (2차 세계 대전중 모두가 나치에 의해 살해당함)은 남았으며, 인류에게 선물한 그의 언어 에스페란토가 남았으며, 자신을 한 민족의, 종교의 구성원일 뿐만 아니라,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믿는 인류인- 인류의 일원-이라고 지금도 믿고 숨쉬고 있는 사람들속에서 그의 이념과 번역서는 숨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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