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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멘호프 전기-11
LEE Jungkee  (Homepage) 2011-02-09 18:03:35, Hit : 1,485, Rec. : 165

자멘호프 집안의 상황은 더 좋아 졌지만, 그리 걱정없는 삶은 아니었다. 1905년부터 1907년 사이의 혁명적 사건들이 바르샤바에도 영향을 미쳤다. 에스페란티스토 지도자들 사이의 갈등과 이디스토의 공격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는 독약이었다. 1907년에 있었던 이도 분파, 그리고 장인 Sender Zilbernik와 자멘호프의 아버지 Mark Zamenhof 의 죽음은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렇치만, 자멘호프의 50번째 생일을 맞아 그의 동생 Lev Zamenhof는 에스페란티스토들에게 이렇게 소식을 전했다.

"지금 자멘호프의 삶은 편안합니다. 그는 일을 매우 많이 합니다. 그는 낮에는 병원 일을 보고, 저녁 내내 에스페란토를 위해 일합니다. 그러나 그는 많은 일에도 불구하고, 나쁜 건강에도 불구하고(심장과 발부분 맥박의 약화)그는 매우 만족스러워합니다. 그는 단지 그의 하루가 24시간 뿐임을, 그가 하고 싶었던 모든것을 시간부족과 나쁜 건강으로 다하지 못함을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21

그는 어떤 사람인가?
그 시대의 사람들의 기억에 따르면, 그의 사진을 통해 사람들은 그의 모습을 쉽게 상상해 볼수 있다.
그는 키가 작고, 늘 검은 옷을 입고, 짙고 듬성듬성한 머리카락을 가진 벗겨진 큰 머리의 모습이었으며, 수염은 갈회색이었다고 한다. 그의 어느때도 벗지않는 금태 안경이 그의 어두운 눈을 가리고 있었다. 그는 온화하게 나즈막히 말했다. 그의 동작은 느릿했으며, 그는 담배를 많이 피었으며, 몸이 약하고 건강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는 실제 나이보다 더 늙어 보였다- 46살도 되지 않았는데 그 자신은 60살 된 사람처럼 느꼈다.
거의 20년 동안 그는 드지카 거리에 있는 4층짜리 붉은 벽돌집 9호 2층(유럽의 계산법으로는 1층)의 아파트에서 살면서 일했다.
그는 “일주일에 하루는 가난한 환자를 위해 무료로 봉사하였으며,<...> 그날 그의 진료소는 가난한 사람으로 둘러싸여 지낸 유일한 바르샤바 안과의사였다.” 그의 진료 요일은 월요일부터 금요일 까지였다.

그의 처조카  Max Levite의 말에 따르면, 그는 안식일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한다.(33
여전히 그의 아버지는 가족과 함께 (친구들도 초대되었다.) 바르샤바의 집에서 안식일을 보냈으며, 그가 죽은 후 그의 아들 Lazarj가 그 전통을 이어갔다.
다소 좋아진 자멘호프의 경제 여건으로 여름에는 몇주일 동안 독일의 해변도시 (Bad Reinerz, Bad nauheim, Bad Kissingen, Bad Salzbrunn, Bad Neunahr 등)에서 쉴수 있었다.
Hachette 출판사와의 일이 그에게 좋은 수입이었으나, 불로뉴에서 그는 승인을 중단하고 Hachette사와의 계약을 다시 준비할 것임을 선언하도록 강요받았다. 승인은 취소되었으나, 구 계약은 여전히 유효했다. Bourlet 는 새로운 잡지의 발간을 Hachette사와 합의하고 그일의 상임 협력자인 자멘호프는 그 잡지에 인쇄되는 글 한줄당 1 프랑을 받기로 했다. 그 제안은 자멘호프로서는 거부할수없는 좋은 조건이었다. 왜냐하면, 그로서는 매달 어떤 번역이든 선택하여 10쪽만 보내면 1년에 4800프랑을 받게되어 좋은 생활수준을 누릴수 있었다.
그일은 처음으로 진정한 문학 작품을 접할수 있게된 에스페란티스토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었다. La Revuo의 창간호는 1906년 9월 1일 ‘에스페란토의 창안자 자멘호프박사의 상시 협력에 의한 국제 월간 문학 잡지’라는 부제와 함께 발간되었다.
Bourlet 는 그일을 주관하였고, 그 잡지의 편집장은 Felixien Menu de Menil (에스페란토 성가 La Espero의 작곡자)이었다.

La Revuo 와 관련하여, 자멘호프는 관리, 편집의 일 뿐만 아니라, 잡문을 쓰거나 운동에 대한 언급도 할 필요가 없었다.
La Revuo 는 그의 번역을 싣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이었다.
그의 번역 목록은 매우 감탄스러웠다. 가장 중요한 것은  La Revuo 가 성경- 세상에서 가장 많이 읽혀지는 작품-의 자멘호프판 번역을 게재하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La Revuo 에는 La najtingalo, La infano en la tombo, Fluganta kofro de Andersen; Marta de Orzeszko; La gimnazio de Sxalom Alejhxen; La Rabeno de bahxarahx de Heine; 그리고 몇가지 희곡들; La revizoro(검찰관) de Gogol; Ifigenio en Tauxrido de Goeto; Georgo Dandin de Moliero; La rabistoj de Sxillero.

이 모든 그의 작품들은 Respondoj 와 Proverbaro Esperanta를 포함하여 책의 형태로 출간되었다.

La Revuo 와 Lingvo Internacia는 자멘호프가 부인과 함께 매년 참석한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에 대한 소식도 충분히 소개하였다. 두 잡지는 그의 대회 연설문을 개재했다.

감동적인 불로뉴 연설(1905)후, 그는 늘 어떤 다른 주제를 선택했다. 제네바 (1906)에서는 인류인 주의에 대해서 발표하려 했으나, 자신이 쓴 연설문중 앞부분만 읽을수 있었다. 그 글에서 그는 ‘실용적’인 측면의 에스페란토주의 외에, 더 중요한 ‘이념적’ 측면이 있다고 설
명했다. 그는 “에스페란토는 단지 언어일 뿐이다; 결코 에스페란토주의를 ‘어떤 이념’과 아주 개인적인 일 일지라도 연결하는 것을 피하라” 라는 보프롱의 주장에 대해 강력히 비판했다.
"만약 사람들이 에스페란토 초창기 운동가들인 우리에게 우리 활동의 이념적인 모든것을 부정한다면, 우리는 분노의 심정으로, 에스페란토를 위해 쓴 모든것을 찢어 불태워 버릴것이며, 우리는 아픈 마음으로 우리가 전 인생을 바쳐 이룩한 업적과 희생의 흔적을 없애버릴것이며, 우리의 가슴에 달린 녹색별을 멀리 던져버릴 것이며, 우리는 증오의 소리로 외칠것입니다: '오로지 상업과 실질적 유용성의 목적만을 위한 그러한 에스페란토라면, 우리는 함께할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라고." (24

3차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 (케임브리지, 1907)의 개회식에서 자멘호프는 에스페란토 대회들의 본질과 목적에 대하여 말했다.
그 대회후 그는 런던 시청 Guildhall에서 공개 연설을 하였다. 그는 이 두가지 비난에 대해 대답했다 : 첫째, 에스페란티스토들은 언어 개선에 반대한다. 둘째, 에스페란티스토들은 나쁜 애국자들이다.

1908년 드레스덴에서 열린 제 4차 대회가 열렸다. 이도 분파 때문에 자멘호프는 자신의 연설을 에스페란토의 안정성과 개선 그리고 언어 위원회의 역할에 대해 할애했다. 드레스덴 대회에서, 언어위원회의 상위 기관으로 에스페란토 학술원을 설치하고 원장으로 Boirac이 선출되었다. 드레스덴에서는 1908년 4월 28일 설립된 세계 에스페란토 협회의 첫 회의가 열렸는데 회장으로 영국인 Harld Bolingbroke, Mudie, 부회장과 기관지 '에스페란토'의 편집장으로 스위스인 Hector Hodler를 선출했다.

5차대회는 1909년 9월 5일부터 11일까지 바르셀로니아에서 열렸는데, 스페인 국왕 Alfonso 13세가 명예 대회장을 맡았다. 그러나 국왕이 명예 대회장을 맡은 일과 왕으로 부터 카토릭 이자벨라 훈장을 자멘호프가 받은 것 에 대해  대회 전에 일어난 카탈루니아 반란의 희생자에 동정의 마음을 갖고있던 사람들은 불쾌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바로셀로니아에서의 연설에서 자멘호프는 폭동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으며, 그의 지금까지의 대회 연설중 가장 가벼운 편이었다.

6차 대회는 처음으로 유럽 밖(워싱톤, 1910)에서 열렸다. 자멘호프는 처음으로 유럽을 떠나, 그가 거의 30년전 세계의 유태인들이 모이기를 원했던 그 나라에 오게 된 것이었다. 그는 매우 열정적으로 연설했다.

" 지금 많은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 죄없이 박해받고 있는 사람들이 꿈꾸는 자유의 나라, 미래의 나라에 와서 나는 여러분에게 인사를 드립니다! 이런 저런 종족이나 종교에 속하지 않고, 모든 정직한 아들들이 사는 나라에 와서 나는 여러분 앞에 머리를 숙입니다...." (25

-그러나 질문에 대답하면서, 더 침착하게 연설을 계속했다.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함에 있어서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가고 있나요? 아니면, 우리는 언젠가 우리의 모든일이 헛된 일이 될것이라는 두려움을 안고 가고 있나요?"

그는 자신의 '본질과 미래' 글에서 이미 그 질문의 답변을 내놓았고 지금 그 문장을 단지 요약하고 있는 것이었다.
워싱톤 대회후에 자멘호프는 세베르장군과 함께 대회 규정을 작업하였다. 그 규정에 따르면, 대회에서 단지 '에스페란토 단체와 협회에서 규정에 의해 선출' 되고 중앙 사무국에 회비를 낸 25명 이상이 자격있는 대표들이었다. 그는 제 7차 대회(안트웨펜, 1911)에서 이 규정안에 대해 연설했다. 자격있는 대표들 자신들이 안트웨펜에서의 권리를 갖은 대표단의 탄생을 지지했으며, 일반 대회 참가자들은 세계 대회장에서의 투표권을 상실했다.

제 8차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 (크라코바, 1912)는 에스페란토 발표 25주년을 기념하여 봉헌되었으며, 자멘호프는 그의 정치-종교적 이념이 에스페란티스토의 이념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에스페란토계에서의 모든 역할을 포기할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축제처럼 그가 자주 참석하여 연설해왔던 세계 대회들은 그로서는 힘든일이었다. 그의 동생 Lev는 이미 초창기 대회때에 그가 동맥경화증으로 아팠으며, 모든 대회 참석이 그의 건강을 악화시켰으며, 대회에 참석하는 일이 그에게는 '즐거운 승리가 아니라 아픈 의무'였다고 쓰고있다.
파리 운동 지도자들의 독단적 태도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었던 두번의 초창기 대회는 그에게 엄청난 정신적 에너지를 앗아갔다.
축제의 크라코바 대회도 어려운 대회였다.
대회 준비 위원회가 크라코바에서 그를 위해 영광스런 일을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대회전에 미리 알고, 자멘호프는 그일을 하지 못하게 했다.
왜냐하면, 폴란드에서는 다른나라에서의 반 에스페란토 기사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기사가 더 많이 개재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기사들은 국제어의 이상이나 언어 자체를 반대하는것이 아니라 그 언어를 창안한 사람이 갖고있는 두가지 부정적 요소를 반대한 것이었다; 그는 유태인이다. 그는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났다 라는 두가지 사항이었다.
그는 그의 명예롭게 되면 에스페란토가 리투아니아 출신에 의해 창안된 언어라고 하여 받아드리지 않는 폴란드 애국자들을 화나게 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폴란드 민족주의자들이 자멘호프가 자기가 태어나지도 않은 나라의 가면을 쓰고 영예를 얻으려 한다는 말을 하지 못하도록 관계자들이 자기를 폴란드 사람이라고 말하지 말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크라코바 대회후에, 그는 대회 뒷얘기때문에 유태 애국자들로 부터 공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가 유태 백성의 이름으로 대회에서 인사하려한 유태출신 대회 참석자들의 의견을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일을 유태 기자들이 알고 두껀의 대회후 기사에서 자멘호프를 비판했다: Dov Ber Borohxov 기자가 쓴 '에스페란토 대회에서의 유태인의 질문' (Di Varhajt, 뉴욕 1912, 9.15, )과 '에스페란티스토 대회에서의 추문' (익명,Togblat: Lvov, 1912, 8.16)이 그것이었다.
자멘호프는 Di Varhajt 기자에게 자신의 답변을 보내야만 했다. 그는 자신에게 책임을 ane는 '에스페란토에 불이익을 주지 않기 위하여 내가 유태인임을 숨겼다' 라고 한 자기의 발언을 부인하면서 이렇게 썼다.

" 이 세상의 모든 에스페란티스토들은 내가 유태인임을 매우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내가 내가 국수주의자처럼 나의 모든 발자국마다 외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결코 숨긴적은 없다.
에스페란티스토들은 내가 작품을 이디시어로 번역을 했고, 3년 이상, 내 모든 자유 시간을 바쳐, 히브리 원전에서 성경을 번역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은 내가 늘 엄격히 제한된 바르샤바의 유태지역에( 많은 유태인들이 그 지역에 사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살고 있으며, 내가 계속해서 나의 작품들을 유태 인쇄소에서 인쇄하고 있다는 사실등을 알고 있다.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 자신의 출신을 부끄러워하고, 자신이 유태인임을 숨기려 하겠는가?"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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