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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덕 역사 연구가의 글 ㅡ한무협 문선집에서
LEE Jungkee  (Homepage) 2015-06-21 13:06:09, Hit : 585, Rec. : 86

한무협과 <La Espero el Koreio>
- HAN Moo-hyup kaj La Espero el Koreio -

                                       전경덕 (CHON Kyongdok) / KEA지도위원
                                                                


한국 에스페란토운동 90년 역사에 순 에스페란토 잡지가 19년 동안 연속 간행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그 첫 호가 1976년 12월에 나와 1994년 12월 종간 될 때까지 총 123호 나왔는데, 그렇게 자랑스러운 역사를 만든 이가 한무협 장군이다.

한무협 장군이 에스페란토 운동에 나서기 전까지 우리 운동은 어떠했는지, 어떤 경로로 한무협 장군이 우리 운동에 참여했으며, 그리고 한무협 장군이 우리 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간단히 정리하고자 한다.

1945년 8월 15일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일제 강점으로부터 조국은 해방을 맞이하였다. 광복 후인 1945년 12월 15일 국내외에 있던 동지들이 모여 조선에스페란토학회(KEI)를 설립하고 한국대회, 강연회, 강습회 등을 개최하여 자못 활기 있게 운동을 전개하였다. 신흥대(경희대 전신) 국학대(현 고려대에 흡수됨), 성균관대, 서울사대 등에서 에스페란토를 교과목으로 교수하였다. 이때 석주명, 홍형의, 이정모 등이 강의하였다. 이는 당시 미군정 문교부장 유억겸의 도움이 있었다. 한국 에스페란토 대회는 3차까지 개최되었으나  4차대회는 6.25 한국전쟁으로 무산되었다.

1950년 한국전쟁 전후로 우리운동은 완전히 전멸, 폐허가 되었다. 홍명희 이극로, 박헌영은 자진하여 북으로 가 북한정권의 고위직까지 지냈다. 김억, 이광수는 북한으로 강제로 끌려갔다. 이정모는 생사 불명이고 6.25전쟁 때 피하지 못했던 석주명은 9.28수복 때 서울 청계천에서 국군 환영을 나왔던 석주명을 인민군 패잔병, 또는 잔류 공산당원으로 오인한 남한 국군 척후병에게 사살되어 청계천 변에 있던 시신을 그의 누이 석주선이 김교영의 도움을 받아 찾았다.

중국 문호 노신의 작품을 에스페란토어로 1930년대에 번역 출간한 엘핀 안우생은 광복과 더불어 김구 선생이 상해임시정부에서 환국할 때 함께 귀국하여 김구선생의 비서로 일하였고, 안우생의 어머니(?)가 부인이 없는 김구선생의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였다. 김구 선생과 안중근 의사의 집안은 사돈지간이고 엘핀 안우생은 안중근 의사의 조카이다. 한국전쟁 직전 김구 선생이 정적의 사주를 받은 안두희에게 피살되고 임시정부 계열 인사와 한독당 및 중도파 정객은 이승만 정권으로부터 탄압을 받게 되자 안우생은 고국을 등지고 홀연히 홍콩을 거쳐 북한으로 들어갔다. 해평 이재현은 엘핀 안우생으로부터 1935년 에스페란토를 배웠다. 그 밖의 동지들은 뿔뿔이 흩어져 서울에서는 우리 운동이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흔적 없이 사라진 것이다. 북한 인민군이 전국토의 대부분 점령하였지만, 대구, 부산 지역은 침략으로부터 피해 있었다.

다행히 대구에는 청구대학에서 최해청, 홍형의가 명맥을 유지하였고 1956년에는 김익진, 서병택, 이원식, 이정호, 이종영, 이종하, 최해청, 홍형의 등 대구의 동지들이 “녹성회”를 조직하여 상호교류를 하였다. 전북 익산에 있던 백남규는 1956년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조선 에스페란토학회 관계 문건을 가지고 대구에 있던 최해청, 홍형의를 찾아가 학회재건을 논의하여 1957년 한국에스페란토학회(KEI)가 대구에서 재건되었고, 청구대에 에스페란토를 교과목으로 넣어 홍형의 교수가 강의를 담당하였다. 특히 1956년 이후 경북고, 경북여고, 사대부고, 청구고, 청구공전, 대구고등학교 에스페란토 특강이 있었고 각 학교에 론도가 설립되고 각 론도가 연합하여 1964년 동심원(한국고등학교 에스페란티스토 연맹)이 창립되어 자못 활발하게 운동이 전개되었다. 이 동심원은 김태경(Semanto GIM)이 지도하였고 초대회장은 김칠현이었다. 김진숙, 전일치, 박대일, 정순태 등이 동심원 출신이다.

이렇게 해서 대구가 한국 에스페란토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때까지 서울의 운동은 암흑 그 자체였다. 1964년 대구에서 열성적으로 우리 운동을 전개하였던 김태경이 서울에 올라와 노산 이은상의 도움을 받아 한국에스페란토협회(KES)를 조직하고 강연회, 강습회, 신문기고 등 에스페란토 서울 운동의 막을 열었다. 김태경은 처음에 서울학원(1964년)에서 강습하였고 그 후 YMCA(1964), 명지대(1965년 이후 계속)등에서 대중강습을 하였던 바 선풍적 인기를 얻고 각 신문에 보도되었다. 이때 바오로김(한국명 김기성, 김일)이 김태경으로부터 에스페란토를 배우고 에스페란토 운동 전면에 나서게 된다. 바오로김은 키가 그리 크지 않고, 머리는 반백이고 말투는 느릿하고 점잖았다. 항상 검정신사복과 검정코트를 걸쳤었고 안경을 썼으며 흡사 천주교 신부 같은 느낌을 주었다.

바오로김이 서울에서 에스페란토 운동을 시도하자 김태경이 강하게 반발하였다. 그러나 바오로김은 운동전개의 활로를 찾고자 부단히 노력하였다. 처음의 강습회를 하였지만 김태경과는 적수가 되지 아니하였다. 통신강좌를 시도하였지만 그것도 별로 신통하지 아니하였다. 백남규의 아들 백상기와 김부미, 이대영 등도 협력하여 대구의 학회의 지원을 받아 활동을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여 백상기, 김부미, 이대영 등과는 헤어지고 홀로 운동을 시도하는 등 나름대로 열심히 하였다.

그런 와중에 우리운동의 새로운 싹을 찾았으니 그가 바로 한무협 장군이다. 한무협을 우리운동에 등장하게 한 것은 바로 바오로김이었다. 바오로김을 만난 한무협은 바오로김으로부터 에스페란토의 언어적 역할, 국제적으로 연계된 점, 세계운동, 한국에서의 운동전개 방향 등을 들을 수 있었다. 한무협은 바오로김의 지도로 에스페란토를 배웠다. 그럼 한무협은 누구인가.

5.16 군사혁명 전 군 생활을 할 때 박정희 장군의 부관으로 근무하면서 박정희와 깊은 인연이 있었다. 박정희가 군사혁명을 성공하여 대통령으로 재직할 때, 한무협은 군에 재직하며 국방대학원 교수, 제26사단장, 국방부합동참모부 정보국장 (1956년~75년) 등을 역임하였고, 1975년 군에서 예편한 후에는 학교법인 금오학원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당시 그는 정부 내에 많은 지인이 있었고 아직까지 상당히 영향력이 있는 전직 장군이었다. (그 후 정부의 예비역 장성들에 대한 배려로 동방해상화재보험 대표를 역임하였다.)

한무협은 1976년 에스페란토 운동에 발을 내딛은 후, 군 출신다운 돌파력으로 에스페란토운동의 활성화를 모색하였다. 그의 꿈은 우리 운동이 지금까지 해오던 소규모 친교적 방식이 아니었다. 그의 활동은 첫째 정부로부터 우리 운동을 위한 금전적 후원을 획득하는 것이었고, 둘째 에스페란토로써 대한민국을 국제적으로 홍보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정부와 교섭하여 정기적인 지원을 약속받고 사업에 착수하여 임의로 [한국에스페란토본부]를 만들고 바오로김과 더불어 <La Espero el Koreio>를 창간하였다. 이 잡지에 순 에스페란토로 한국의 역사, 문화, 경제, 관광 등 다양한 기사에 천연색 화보를 곁들여, 당시 한국과 교역이 없던 적대국 중국, 소련 및 동구권 국가에까지 배부하여 선풍적 인기를 끌며 한국의 위상을 알렸다.

한편 한국에스페란토협회(KEA)는 1975년 8월 KEA로 통합되어 있었고, 당시 회장을 맡고 있던 최덕신이 1976년 2월 미국으로 정치적 망명(후에 평양에 거주)을 하면서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사무국장 급여도 지급 못하고 1978년 하반기부터 1980년까지 2년여를 기관지 발행조차 못할 만큼 형편이 어려웠다.

<La Espero el Koreio> 창간 준비호(1976년 11월)부터 제12호(1977년 12월)까지 바오로김이 홀로 편집하다가 1978년 1월호부터 김칠현과 기쿠치 요시코(김태경의 부인)가 편집에 합류하여 이들은 약간의 경제적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1981년~82년에는 우리협회 기관지를 <La Espero el Koreio> 내의 지면에 올려 발행하는 등, 한무협은 여러 방면으로 우리 운동을 떠받쳤다.

에스페란티스토 한무협의 특징과 우리운동에 끼친 업적을 여기에 정리한다:

1. 우리나라의 에스페란토 운동가 대부분은 학생시절, 혹은 젊은 시절에 에스페란토를 접하고 후에 운동 선상에 남지만, 한무협은 군과 정부의 고위직을 마치고 중년에 이 운동에 참여한 것이 특이하다.

2. 원래 우리운동은 돈과의 거리가 멀다. 몇몇 사람들의 주머닛돈으로 소꿉장난처럼 하는 소규모 운동인데 한무협이 나타나 정부 지원으로 국가홍보지를 발행함으로써 우리 협회가 재정적으로 숨통이 트이게 되었다.

3. 그의 아이디어와 노력 덕분에 하마터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지워졌을 에스페란토운동사의 단편들이 에스페란토 잡지 <La Espero el Koreio>에 보존되었다.  

4, 그는 한국 에스페란토운동 대통합에 자신의 기득권을 일체 요구하지 아니하고 기꺼이ㄹ 참여하였고, 이후 KEA회장을 역임하는 동안 주요 국제행사들을 성공적으로 치러냈고, 현재 한국에스페란토협회 명예회장으로 재직하며 기관지 발행을 후원하는 등, 늘 우리 운동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한무협 명예회장님이 오래오래 강건하시길 기원한다.
                                                                 (2014년 5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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